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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영화와 여성 – 주체성, 대상화, 그리고 재현의 전환

by Tovhong 2025. 6. 22.

디스크립션

영화 속 여성은 언제나 두 가지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대상화’의 시선,
다른 하나는 말하기와 행동을 통해 능동적 존재로 그려지는 ‘주체성’의 시선입니다.
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의 확장, 사회구조의 변화,
영화 산업의 다변화를 맞이하며, 여성 재현의 전환이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할리우드, 유럽,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90년대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고 말하게 했는지를 분석하며,
**미디어리터러시 관점에서 ‘여성 재현의 윤리와 권력’**을 정성껏 해석합니다.


1. 여성 재현의 시작점 – 왜 이 문제를 묻는가?

1-1. 여성은 언제나 영화에 존재했다.

하지만, ‘존재’와 ‘재현’은 다릅니다.
여성이 영화에 등장했더라도,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떤 위치에 배치되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 단순한 조연, 로맨스 대상, 희생자
  • 주인공의 동기 부여 수단으로 기능
  • 서사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배경으로 설정

→ 즉, 여성은 있었지만 ‘말하게 두지 않았던’ 존재였습니다.

1-2. 재현은 권력이다.

  • 누가 여성을 말하는가? (남성 감독, 작가, 산업)
  •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가? (시선, 의상, 카메라 워크)
  • 어떤 감정을 유도하는가? (연민, 욕망, 보호 본능)

→ 여성 재현은 단순히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시선의 문제, 즉 이데올로기의 문제입니다.


2. 헐리우드 영화: 소비되는 여성에서 말하는 여성으로

2-1. 대상화의 정형적 구조

1990년대 할리우드는 여전히
‘보는 여성’이 아닌 ‘보이는 여성’의 구조를 고수했습니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990s): 미적 대상
  • 《인디펜던트 데이》(1996): 주인공의 가족 혹은 연인
  • 《타이타닉》(1997): 로즈는 중심에 있지만, 결국 남성 시선의 회고 대상

→ 이 구조는 여성의 감정은 강조되지만, 선택과 행동의 주체성은 제한합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 이미지

2-2. 변화의 조짐 – 강한 여성 캐릭터

그러나 90년대는 여성 주체의 출현이 본격화되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 《델마와 루이스》(1991): 억압된 여성의 탈출 → 반체제적 시선
  • 《앨리 맥빌》 (1997~): 전문직 여성의 일과 감정 →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제안
  • 《물랑 루즈》(1990s 이후 영향 확산): 여성의 욕망도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 있음

→ 이는 단순히 강한 여성이 아닌,
욕망, 고통, 선택을 스스로 말하는 존재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계기입니다.

2-3. 이중성 – 자율성과 상품성의 경계

강한 여성도 여전히 ‘섹시함’과 ‘감성’으로 포장된 상태에서만 허용됨.

  • 능력 있는 여성 = 아름다워야 함
  • 말할 수 있는 여성 = 공감 가능한 방식으로만

→ 이는 자율성의 확대와 상품성의 제한이 공존하는 모순된 시기였습니다.


3. 유럽영화: 침묵과 시선, 윤리의 역전

3-1. 여성은 ‘보이는 존재’가 아닌 ‘사유의 기호’

유럽영화는 헐리우드와 달리
여성을 감정 소비가 아닌 존재 질문의 장치로 사용합니다.

  • 《붉은》(1994): 모델 여주인공 → 도청하는 노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질 탐구
  • 《피아니스트》(2001): 여성의 감정과 신체는 파괴되는 전쟁의 상징
  • 《로제타》(1999): 생존에 몰두하는 소녀 → 감정 없는 삶의 윤리

→ 여성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 고통과 침묵을 상징하는 철학적 도구로 쓰입니다.

3-2. 침묵하는 여성 – 능동인가, 억압인가?

  • 감정을 말하지 않음
  • 시선을 피하거나 고정
  • 관객의 해석에 의존

→ 유럽영화의 여성은 때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능동성을 갖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억압을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함

→ 미디어리터러시 관점에서는 이 침묵이 자율인지, 강요인지 해석할 필요가 있음


4. 한국영화: 말하지 않는 여성, 대신 소비되는 여성

4-1. 가족 안의 여성 – ‘어머니’와 ‘희생자’

90년대 한국영화에서 여성은 대개 다음 두 위치 중 하나입니다:

  • 어머니: 침묵하고 헌신하는 존재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 애인 또는 희생자: 남성 주인공의 서사에 소모됨

→ 여성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가부장적 질서와 산업적 시선이 결합된 구조 때문

4-2. 도시화와 성적 대상화

90년대는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 성 해방이 동시 전개된 시기입니다.
→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다음과 같이 소비합니다:

  • 유흥업소 여성, 룸살롱 장면, 클럽 여배우 → 시각적 대상화
  •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결정은 남성이 함
  • 스토리 중심의 기능만 수행

→ 이는 여성이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남성적 욕망을 반영한 거울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4-3. 변화의 시도 –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

90년대 후반, 일부 영화에서 여성이 말하고 선택하는 주체로 이동합니다.

  • 《꽃잎》(1996): 광주민주화운동의 여성 피해자
  • 《바람난 가족》(2003, 90년대 영화 문법 계승): 여성의 욕망과 일탈
  • 독립영화계에서의 여성 감독 작품 증가

→ 그러나 이 시도는 주류 영화 시장에서는 제한적이며, 대부분 ‘불편한 시선’으로 소비됨


5. 미디어리터러시 관점 – 여성을 읽는 3가지 시선

5-1. 시점: 누가 여성을 말하는가?

  • 남성 감독 vs 여성 감독
  • 시나리오 속 여성 대사의 양과 질
  • 여성 캐릭터의 ‘말하기’와 ‘결정하기’의 비중

→ 여성의 말이 설명적·감정적 표현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의 근거가 되는가를 분석
해야 함

5-2. 시선: 어떻게 보이는가?

  • 의상, 카메라 각도, 조명 → 남성적 응시(Male Gaze)의 재현 여부
  • 여성의 신체가 강조되는 장면이 ‘서사적 필요’인가, ‘시각적 자극’인가?

여성 캐릭터가 감상 대상인지, 이해 대상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함

5-3. 감정: 누구의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되는가?

  • 여성의 감정은 자율적인가, 타인의 감정에 종속되는가?
  • 감정의 표현은 해방인가, 억압의 반복인가?

→ 감정조차 구조적 기획 아래 설계된 것임을 읽어야 함


6. 대표 영화 비교 분석

영화국가여성 역할특징
델마와 루이스 미국 탈출자, 반항자 여성 주체성 선언
타이타닉 미국 회고자, 연인 남성 시선 구조 유지
붉은 유럽 관계의 상징 철학적 침묵의 공간
로제타 유럽 생존의 몸 말없는 저항
초록물고기 한국 침묵하는 연인 주인공 장치화
꽃잎 한국 피해자이자 고발자 구조 폭로적 서사
 

결론: 여성이 말할 때, 영화는 달라진다.

1990년대 영화는
여성을 기능적 배역, 시각적 자극, 감정 소비의 대상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모색한 과도기적 시기였습니다.

  • 할리우드는 감정과 매력을 전제로 한 여성 주체의 등장
  • 유럽은 침묵과 상징을 통해 여성의 철학적 해석 시도
  • 한국은 침묵과 소외에서 점차 말하기로 이동하는 도전

미디어리터러시란, 여성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 역할이 어떤 시선에 의해 기획되었는지를 읽어내는 능력
입니다.

“여성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는 것은,
그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권력을 허락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