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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누구의 입으로 말하는가? – 사회적 약자의 소거 분석

by Tovhong 2025. 6. 19.

디스크립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이자,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 언어는 언제나 모두의 목소리를 담지 않습니다.
1990년대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음’과 ‘말하지 못함’ 속에서 소거(消去)당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헐리우드, 유럽,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누구의 이야기는 말해지고, 누구의 존재는 침묵 속에 놓였는지 분석하며
미디어리터러시의 핵심 요소인 '대표성과 배제'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봅니다.


1. 왜 '사회적 약자'는 보이지 않는가?

1-1. 보이지 않는 존재, 말하지 못하는 목소리

‘사회적 약자’는 단지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제도적으로 불리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범주가 포함됩니다:

  • 성별/성적소수자
  • 인종/이민자
  • 장애인/노인
  • 노동자/비정규직
  • 하위계급, 빈곤층
  • 청소년/고령자

이들의 공통점은 미디어의 중심 서사에서 배제되며,
말해질 수 없는 존재, 또는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대리 발화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점입니다.

1-2. 재현이란 무엇인가?

재현은 단순한 반영이 아닙니다.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관점으로 이야기되는가를 포함합니다.

  • 재현 = 권력
  • 재현되지 않는 존재 = 사회적 ‘존재하지 않는 자’

미디어리터러시는 단지 보이는 것을 소비하는 능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질문하는 비판적 사고 능력입니다.


영화 <그린마일> 포스터 이미지

2. 헐리우드: 다양성의 탈을 쓴 중심성 유지

2-1. 대표성의 허상

1990년대 헐리우드는 ‘다문화주의’, ‘포용적 영화’ 등의 이름으로
소수자나 약자 캐릭터를 등장시켰지만,
그 대부분은 백인 남성 중심의 이야기 속에서 장식적 역할로 배치됩니다.

  • 《포레스트 검프》(1994): 장애를 소재로 하지만, 서사는 여전히 ‘정상성 회복’ 중심
  • 《그린 마일》(1999): 흑인 캐릭터는 ‘마법적 흑인’으로, 백인 주인공의 내면 성장 보조자
  • 《슬리핑 위드 더 에너미》(1991): 여성 주인공의 해방이 남성 구원자 서사에 의존

이는 표면적 포용이지만, 결국 주인공은 언제나 백인, 이성애자, 남성입니다.

2-2. 약자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말해진다.

헐리우드의 전략은 흔히 다음과 같습니다:

  1. 약자는 상징화됨 – 하나의 정형적 이미지로 축소
  2. 말하지 않음 – 서사 내에서 실제 목소리 없음
  3. 구원당함 – 주체가 아닌 객체로 존재

→ 이는 약자를 중심으로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주체성을 소거하는 방식입니다.


3. 유럽영화: 존재하지만 침묵당한 사람들

3-1. 무대사의 존재들

유럽영화는 약자를 드러내지만, 말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걸어다니고, 움직이고, 존재하지만, 발화하지 않습니다.

  • 《로제타》(1999): 빈곤층 여성, 거의 대사 없이 생존만 보여줌
  • 《붉은》(1994): 이웃을 도청하는 노인 – 듣기만 하지 말하지 않음
  • 《피아니스트》(2002):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침묵하는 유대인

이러한 연출은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실제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은 미뤄집니다.

3-2. 침묵이 윤리인가, 미화인가?

유럽영화의 침묵은 때때로 미학이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다음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 감정은 있으나 사회적 맥락은 제거됨
  • 존재는 있으나 권력 관계는 언급되지 않음
  • 관객의 자율 해석에 기대지만, 비판적 구조 분석은 회피됨

결국 이 침묵은 시스템과 권력에 대한 근본적 질문 없이 감상성만 남깁니다.


4. 한국영화: 침묵의 재현을 통한 구조적 암시

4-1. 말하지 않음이 곧 사회 비판

한국영화는 사회적 약자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그들이 왜 말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
으로 접근합니다.

  • 《박하사탕》(1999):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 침묵하는 개인
  • 《초록물고기》(1997): 조직 폭력과 빈곤이 결합한 청년의 말 없음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청년, 여성, 무직자의 대화 단절

이러한 연출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자체가 말하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4-2. 여성과 노동자, 이중 침묵의 구조

1990년대 한국영화 속 여성과 노동자는
이중으로 침묵당합니다:

  1. 가부장적 구조
  2. 경제적 위계
    → 결국 영화 속에서조차 **‘존재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대상’**으로 재현

예:

  • 《춘향뎐》(2000): 고전적 텍스트 속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
  • 《가족의 탄생》(2006): 소외된 관계망 속 말하지 않는 여성들

5. 소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5-1. 소거의 기술들

소거 방식설명예시
비가시화 등장 자체가 없음 퀴어, 장애인 부재
대리 발화 다른 인물이 대신 말함 백인 남성이 흑인 대변
상징화 단일 이미지로 축소 ‘불쌍한’, ‘희생적’ 캐릭터
구조적 침묵 말할 수 없는 구조만 제시 노동자, 빈곤층의 무대사 처리

5-2. 관객이 놓치는 순간들

  • "이 영화에서 여성은 말했는가?"
  • "이 장면에 흑인은 있지만, 주체로 말했는가?"
  • "가난은 배경인가, 서사의 중심인가?"

이러한 질문 없이는, 관객은 소거의 기술을 소비하게 됩니다.


6. 미디어리터러시로 읽는 대표성의 윤리

6-1. 리터러시는 '누가 말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 콘텐츠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입으로 말하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함
  • 이는 발화자(화자)의 권력을 묻는 리터러시 핵심 질문

6-2. 침묵을 해석하는 능력

  • 침묵은 회피인가, 전략인가?
  • 침묵의 맥락(왜, 언제, 누구에 의해)을 비판적으로 분석

6-3. 영화 만들기와 리터러시

  • 단지 소비자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시선 훈련
  • 재현의 윤리: 보여주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은 모두 권력 행위

7. 영화 사례 분석 정리

영화약자 유형소거 방식리터러시 메시지
포레스트 검프 장애 상징화, 대리 발화 장애인의 주체성 부족
로제타 빈곤 여성 무대사, 침묵 구조적 말불능
박하사탕 피해자 시간 구조로 감춤 사회적 침묵 비판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동, 빈곤 감정적 소비 현실의 맥락 제거
그린 마일 흑인 ‘마법적 흑인’ 설정 백인 중심 구조 강화
 

결론: 말하지 않는 자, 말할 수 없는 자를 보는 눈

1990년대 영화는 겉으로는 다양해졌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말하지 못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만 존재했습니다.

  • 헐리우드는 상징과 장식으로 포장했고
  • 유럽은 윤리적 침묵으로 미루었으며
  • 한국은 구조 속 침묵으로 문제를 암시했습니다.

미디어리터러시란, 말하는 자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자까지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입니다.

우리가 진짜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누구의 목소리로 구성되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며, 누구의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가?”